개발자 커리어 회고: 정해진 알고리즘은 없다, 나만의 로직으로 쓴 10년
인생에 정해진 알고리즘은 없었다. 오직 끊임없는 런타임 에러와 수정이 있었을 뿐. 컴파일 에러가 났던 20대부터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엔지니어로 스케일업(Scale-up)하기까지. 10년의 실패를 리팩토링하며 나만의 커리어 아키텍처를 구축해온 치열한 기록.

TL;DR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
"돌을 어떻게 쌓을지는 너 하기에 달렸다" -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대사
이 글은 지난 10년을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글입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도전을 했고, 그만큼 수많은 실패를 겪어온 시간이었습니다. 그 치열한 과정 속에서 저는 늘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앞으로의 10년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마 저는 여전히 도전하고, 넘어지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 20대, 30대의 새로운 시작의 위한 회고록이니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rologue
컴파일 에러로 시작된 20대
2017년, 나의 인생은 시작부터 '컴파일 에러'가 난 것만 같았다. '좋은 대학' 이 인생의 전부였던 나는 재수 실패 후 "나는 실패한 인생인가" 라는 의문이 맴돌았다.
기계공학도로서 열심히 학과 공부를 하면서 살긴 했지만, 나의 미래는 처음 봤던 터미널 창 화면처럼 커서는 깜빡이는데 무엇을 입력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처럼 느껴졌다. 그게 내 20대 초반의 기억이다.
그 때는 몰랐다. 유명한 로직(좋은 대학 입학 후 좋은 기업 입사)을 그대로 따르는 것보다 나만의 인생 로직을 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v1.0 The First Commit
타인의 정답이 아닌, 나만의 리포지토리를 생성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들과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던 곳은,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보폭으로 걷는 곳. 한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통제받는 공간, 군대였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세상에는 "수능-입학-취업" 이라는 하나의 알고리즘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나도 나만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답을 찾으러 다녔고, 그에 대한 답은 책에 있었다. (사실 아직도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병영 도서관에서 수 많은 투자서와 자기계발서를 탐독했고 결론은 명확했다.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선 사업과 투자를 해야했다. 하지만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데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망해도 재기할 수 있는 기술, 나만의 무기가 필요하다."
나의 첫 프로그래밍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 비즈니스를 내 손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프로그래밍으로 먹고 살 줄 몰랐다.)
v2.0 Unit Test Passed
패배감이라는 버그를 잡고, 가능성을 검증하다
패배감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 En#(세종대 교내 동아리) 덕분이었다. 좋은 기업을 간 선배들과 사업을 성공한 선배들을 보면서 "이곳에서 열심히 하면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동아리 동기들과 함께 열심히 프로그래밍에 몰두했고 실력을 쌓아갔다.
"아, 되는구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나중에 얘가 제일 잘해질 것 같다"는 선배의 말과 공모전 수상과 Microsoft ImageCup World Finalists 라는 성과는 "뭘 해도 안되는 놈" 이라는 생각을 없애줬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곧장 창업이라는 어찌보면 그 시기에 가장 큰 도전을 향해 뛰어들었다.
지정헌혈 플랫폼 '피플'의 창업 멤버로 합류하며 나는 '올라운더(All-rounder)'로 진화했다. 기획부터 개발, QA, 그리고 투자 유치(IR)까지. 사용자의 목소리가 코드로 구현되고, 그것이 다시 비즈니스 성과로 돌아오는 전체 사이클을 경험하며 나는 비로소 '개발하는 사업가'의 시야를 갖게 되었다.
v3.0 Continuous Integration (CI)
반복되는 실패, 그 반복 속에서 시스템을 고도화하다
202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창업에 전념했다. 이 시기는 나에게 있어 거대한 CI(지속적 통합) 파이프라인과도 같았다. 코드를 짜고, 현실에 부딪히고, 에러 로그를 분석하며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치열한 반복의 연속이었다.
Integration 1: 제약 조건 속의 최적화 (F&B 조각투자 플랫폼 창업) '버닝서프라이즈' 팀에서의 시간은 모든 리소스를 사비로 충당하고, 기획부터 인프라까지 홀로 해내야 하는 극한의 환경이었다. 나는 '비용 최적화'와 '금융 보안'이라는 상충하는 제약 조건들을 통합(Integration)해내야 했다. 결과적으로 3억 원 규모의 펀딩 중 3천만 원을 달성하는 유의미한 트래픽을 만들어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한정된 리소스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짜내는 최적화 방법을 터득했다.
Integration 2: 인프라 역량의 확장 (Drag-and-Drop 클라우드 SaaS)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과정에서 시도한 이 프로젝트는 "아키텍처만 그리면 배포는 우리가 해줄게"라는 야심 찬 아이디어였다. 비록 사업화 단계까지 가진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체득한 IaC(Infrastructure as Code), IAM 권한 관리, 그리고 복잡한 네트워크 설계 능력은 그 어떤 강의로도 배울 수 없는 실전 근육이 되었다.
두 번의 서비스 종료.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버그가 아니었다. 엔지니어로서 더 견고한 아키텍처를 갖추기 위한 필연적인 '리팩토링 과정이었다.
v4.0 System Scale-Up
금융 도메인 위에서 기술과 역량을 확장하다
2024년, 잇따른 도전의 피로감 속에서 나는 잠시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했다. 생계를 위해 프리랜서로 뛰며, 동시에 대기업 입사를 위해 KB데이타시스템 인턴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이 시간은 결코 정체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술'과 '비즈니스 감각'을 동시에 성장시킨 시기였다.
프리랜서 활동은 실전 커뮤니케이션 훈련이었다. 나는 클라이언트와 기획자들의 모호한 요청 너머에 있는 '핵심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이를 소프트웨어로 명확히 구현해내는 문제 해결 능력을 길렀다. 또한, 고객 응대부터 계약 체결까지의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며 비즈니스의 실무 흐름을 몸으로 익혔다.
동시에 KB데이타시스템에서는 엔터프라이즈급의 표준을 배웠다. 금융권의 까다로운 RFP를 분석하고 그에 맞춰 물리 인프라(On-Premise)를 설계하는 경험을 통해, 대규모 시스템이 갖춰야 할 견고함과 규격을 체득할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 늘 나의 관심사였던 '투자'와 '금융'을 다루는 스타트업에서의 제안이 찾아왔다. 안정적인 대기업 취업이라는 선택지가 눈앞에 있었고, 스타트업은 여전히 불안정한 야생이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안정'보다는 '성장'과 '도전' 원하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20대 마지막 도전이다. 여기서 승부를 보자."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스타트업 생태계로 뛰어 들었다. 부동산 PF 관련 기업을 거쳐, 현재는 미국 주식 관련 스타트업의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야생의 실전 환경에서 나는 다른 개발자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실무와 관련된 금융 도메인 지식을 습득했다.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부터 고성능 API 개발, 대용량 처리를 위한 DB 설계와 쿼리 최적화, Kubernetes, 클라우드 서비스 구축/운영. AI Workflow 구축까지 남들보다 압축적인 시간 동안 금융 IT의 핵심 역량들을 내 실력 위에 쌓아 올렸다.
이제 나는 단순히 기능 명세서대로 코드를 찍어내는 개발자가 아니다. 창업/프리랜서 시절 익힌 능력으로 복잡한 비즈니스의 흐름을 읽고, 그 요구사항(Requirements)을 가장 효율적인 기술로 치환해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성장하고 있다.
v5.0 BAAP (Beyond AI Advanced People)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가치, BAAP를 향하여
이제는 어떻게 해야 AI에게 대체되지 않을 사람이 될 수 있는 지를 고민해야하는 세상이 왔다. 사실 고백하자면,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가치'가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언젠가 대체될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AI를 통해 모든 것을 해내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정의는 '미래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사실뿐이다.
20대를 거치며 깨달은 건 하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눈앞에 놓인 문제에 몰입하고, 선택의 순간마다 치열하게 고민하여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태풍이 몰려올 때, 가장 고요하고 안전한 곳은 역설적이게도 태풍의 한가운데, '눈(Eye)'이라고 한다. AI와의 경쟁, 현실의 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지금. 나는 도망치기보다 그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태풍의 눈, 그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려 한다.
지금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내가 AI에게 대체되지 않는 고유한 존재가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어쩌면 그 치열한 태풍 속에서 나만의 중심을 지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